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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정혈 효능 점혈무술

알찬 정보|2021. 8. 1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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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혈법

점혈무술은 혈을 눌러 상대를 공격하는 무술이다. 

작년인가 유튜브에서 중국에서 있었던 무술가들의 대결을 본 적이 있다. 대결을 한 무술가들은 한 명은 격투기 도장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가짜 무술가들을 혼내주는 것으로 유명한 쉬샤오동이라는 사람이고, 한 명은 점혈무술을 하는 사람이었다. 점혈 무술가는 상대의 점혈을 공격해서 제압한다는 자칭 점혈의 고수였다. 이 사람이 중국의 전통무술을 얕보는 쉬샤오동을 혼내주겠다고 해서 둘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점혈 무술가가 허망하게 패하고 말았다. 시종일관 두들겨 맞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심판이 경기를 중단해 버렸다. 아래가 유튜브 영상이다.

 

이렇게 중국의 전통무술은 영화에서나 멋있게 보일뿐 실전에서는 영 쓸모없는 기술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점혈도 치고받고 하는 격투에서는 사실 써먹기 힘든 기술이다. 서로 빠르게 치고받는 상황에서 상대 신체의 한 점을 찌르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상대가 저항 없이 가만히 서있다면 모를까 계속 움직이는 상대에게 점혈 기술을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혈은 그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굳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급상황에서 구해주거나 치료해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점혈무술은 혈자리 즉, 경락을 손으로 찌르는 것인데 혈자리를 세게 찌르면 공격이 되지만 적당한 힘으로 눌러주면 지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무술의 고수들은 무언가에 다치거나 공격을 당해서 괴로운 사람들의 혈을 눌러주어 구해주기도 한다. 물론 영화의 장면일 뿐이지만 지압은 건강에도 좋다고 일반적으로 인정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점혈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 점혈무술에 관한 책을 산 것이 있다. 40년 동안 보관하고 있다. 비슷한 책은 있지만 내가 산 책은 현재 절판이 되고 없다. 어렸을 때 그 책을 보면서 열심히 내 몸의 급소를 눌러보며 익힌 기억이 아련하다. 오늘부터 점혈무술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먼저 견정혈에 대해 알아보자. 견정혈의 위치와 견정혈 효능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한다.

 

견정혈

견정혈 위치

견정혈은 어깨 뒤쪽에 있는 혈이다. 견정혈은 두 군데 있다. 한글로는 같지만 한문으로는 다르다. 하는 어깨 위쪽에 있는 견정혈이고 하나는 어깨 뒤쪽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견정혈은 어깨 뒤쪽의 견정혈이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자.

 

 

견정혈 위치

 

그림에서 보듯 견정혈은 겨드랑이를 붙였을 때 등과 팔이 붙는 지점에서 조금 위쪽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견정혈은 팔과 어깻죽지가 경계선 아래쪽 즉 겨드랑이를 팔에 밀착시켰을 때 생기는 주름에서 위쪽으로 3cm 정도 위에 위치하고 있다.

견정혈 공격

모든 혈자리가 마찬가지인데 제대로 짚어서 힘을 주면 꽤 아프다. 어떤 혈은 조금만 힘을 줘도 상당한 통증을 느낀다. 물론 이 정도는 지압의 수준이고 상대를 제압하려면 살을 파고들듯이 강력한 힘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점혈을 제대로 익히려면 손가락 힘을 키우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강력해진 손가락의 힘으로 혈을 파고들듯이 급격하고 강력하게 누르거나 때리면 상대는 거꾸러지는 것이다. 어떻게 공격하는지 사진을 통해 보자.

 

 

좌측의 사진에 견정혈의 위치가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부분을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집게처럼 해서 상대의 겨드랑이를 세게 쥐고 엄지로 견정혈을 급격하게 누르는 것이다. 누를 때는 살을 파고들게 눌러줘야 한다. 하기야 그 정도의 힘이면 굳이 급소가 아니라 어느 곳을 눌러줘도 상대는 기겁을 할 것이다.

 

견정혈을 제대로 공격하면 무기를 지닌 상대가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급격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견정혈 지압

위에 말했듯이 혈이란 세게 누르거나 때리면 급소가 되고 적당한 힘으로 눌러주면 지압이 된다. 뜸도 실은 이런 혈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럼 견정혈은 지압을 해주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을까?

 

견정혈은 지압이나 뜸으로 다스릴 경우 손발의 운동 기능 장애를 고치는 곳이라 한다. 또한 이명과 액취증 치료에도 쓰이는 혈자리다.

 

이상으로 견정혈의 위치와 효능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체할 때 눌러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합곡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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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EUREKA) 환희의 순간

생각하는 글|2021. 8. 1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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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EUREKA)

몇 해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인터스텔라. 영화 중의 한 장면이다.

 

 

 

"유레카!"(EUREKA!)

과학자가 된 주인공의 딸이 인류를 구원해 줄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소리치는 장면이다. 

 

무언가 큰 발견을 했을 때 유레카라고 소리친다. 유레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알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에서 유래한다.

 

아르키메데스

시칠리아에 히에론 왕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황금 왕관이 순금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혹시 은을 섞어 놓고 황금 왕관이라 속인 것인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일을 맡겼다. 황금인지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를 알아내라는 것이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당시 과학자로서 명성을 떨치던 사람이었다. 후에 그는 로마가 침공했을 때 돋보기의 원리를 이용하여 거울에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방식으로 로마 함선을 불태우기도 했었다. 로마에게 함락이 되었을 때는 수학적 원리를 발견한다고 골몰하고 있는 통에 당장 떠나라는 로마 군인의 명령을 무시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그는 왕관에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판별하는 방법을 찾느라 골몰하였으나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에 갔다. 그리고 탕 안에 들어가자 물이 탕 밖으로 넘쳤다. 이를 본 그는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물체의 밀도에 따라 물이 넘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황금 왕관을 물속에 넣고 넘치는 물의 양을 쟀다. 다음엔 황금 왕관과 같은 무게의 황금을 물속에 넣어서 넘치는 물의 양을 비교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왕관에 순수 황금이 아닌 불순물이 섞여 있음을 알아냈다. 그는 처음 목욕탕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물 밖으로 튀어나오며 유레카(EUREKA)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후로 중요한 발견의 순간에는 유레카라고 외치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는 방법

그러면 그는 어떻게 목욕탕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왕관에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알아내는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친 그는 목욕탕에서 잠시 쉬고자 했던 것이다. 그 쉼의 순간에 유레카가 찾아온 것이다.

 

고민을 하고 방법을 연구할 때는 여러 정보들이 뒤섞이게 된다. 이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한 줄로 통합돼야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 보면 드디어 모든 정보들을 한 줄로 늘어놓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여러 정보들이 얽히고설켜서 한 줄로 서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그냥 쉬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자꾸 연구만 계속하다 보면 더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정보들을 놓아주면 그 정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 유기적 연관성을 드러낼 수가 있다. 그 순간 유레카가 다가오는 것이다.

 

무언가 고민되는 일이 있는가? 그럼 먼저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정보들을 끌어 모을 수가 있다. 만약 정보는 충분한데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다. 잠시 그 고민들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 휴식 속에서 유레카는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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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사람의 아들 깊이 있는 고뇌

생각하는 글|2021. 8. 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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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의 대가인 이문열 선생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사람의 아들이라 생각한다.

이문열 선생이 풀어쓴 삼국지가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이문열이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 작품으로 인해 이문열이라는 이름은 단번에 한국 소설의 대표가 되었다. 소설의 깊이 있는 고뇌는 시대를 고민하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문열 사람의 아들

그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방대한 기독교와 주변 신화에 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수많은 이야기의 얼개를 잘 짜인 그물처럼 탄탄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 소설이 나오고 그 시대를 청춘으로 살았던 사람들 중에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만큼 충격을 몰고 온 소설이었다. 그 소설을 읽으면 과연 신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비록 결말이 왠지 허무해 보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지적 폭풍을 몰고 온 것은 틀림없다. 그럼 이문열 사람의 아들 줄거리는 어떤 내용일까? 

 

기독교를 믿다 그저 희생과 사랑만 강요하는 교리에 실망한 젊은 신학도가 있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전능한 신이 약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부조리를 감내하라는 교리에 실망한다. 그는 약자들을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신을 원했다. 약자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학교를 뛰쳐나와 거리에서 자신의 종교를 만든다. 교리를 새로 쓰고 약자들을 위한 사회 정의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젊은이가 따르게 된다.

 

그 젊은이는 그를 대신해 약자들을 보살핀다. 공동체 생활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가진 자들에게서 돈을 훔쳐와 약자들을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점점 과격해진다.

 

이를 본 신학도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과 방식이 틀릴 수도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점점 폭력으로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젊은 추종자를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떠나버린다. 결국 젊은이에 의해 신학도는 죽음을 맞게 된다. 신학도가 다시 기독교로 귀의하려 하자 젊은이가 죽인 것이다.

 

 

 

아하스페르츠 이야기

처음에 젊은이는 신학도가 새로이 만든 교리에 열광한다. 새로운 교리에 등장하는 신은 인간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며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신이다. 결코 희생을 강요하며 계속 약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신학도가 새로이 구성하는 경전의 내용에 아하스페르츠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예수의 40일 광야 시험 때의 이야기다. 굶주린 예수 앞에 세상의 고통에 고민하며 방황하던 아하스페르츠가 나타난다. 아니 아하스페르츠가 세상을 돌아다니다 광야에 들어갔을 때 예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예수를 알아보고 질문을 던진다. 돌을 빵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 굶어 죽어가는 이들을 구해주라고 한다. 그게 사랑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번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한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고 한다. 물론 이 요구도 거절당한다. 아하스페르츠는 예수를 향해 외친다. 빵과 권능이 있어야 사람들이 당신을 따를 것이라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그를 호되게 야단친다. 결국 아하스페르츠는 예수를 떠난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 신학도가 만든 새로운 경전의 내용이다. 결말은 신학도와 그의 제자인 젊은이는 갈라서게 된다. 갈러선 게 아니고 신학도가 젊은이를 떠난다. 젊은이의 가진 자들을 향한 폭력, 강도짓이 무서워진 것이다. 약자를 위한 사랑이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이것은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진정한 신이란 결국 기독교의 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젊은이를 떠나게 되는데 나중에 젊은이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스승인 신학도를 죽이게 된다.

 

이런 내용이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얽히고설켜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낸 소설이다. 무엇보다 깊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다.

 

결국 소설은 '신'이란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은 젊은 시절의 신학도나 그의 제자처럼 옆길로 새게 된다. 그럼 신이란 존재에 대한 질문은 무엇일까? 결국 '악'의 문제로 귀결된다.

 

 

 

악의 문제

여기서 '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악이 아니다. 종교적 의미의 악은 더 포괄적이다. 정상 상태를 변질시키는 것은 악이다. 건강한 상태를 변질시키는 질병은 악이다. 배고픔도 악이다. 권력에 의한 폭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깨끗한 창조세계를 훼손시키는 것은 모두 악이다.

 

아하스페르츠는 예수에게 돌을 들어 빵으로 만들라고 한다. 배고픔을 해결해 주라는 말이다. 사실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의 종이 되고 자식들을 팔고 전쟁터로 나가게 된다. 먹는 것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상의 고통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배고픔도 악이다.

 

그럼 전능한 신이 왜 이런 악을 허용하고 있을까? 다른 종교는 대부분 선신과 악신의 대결 구도를 가진다. 그래서 어느 때는 선신의 힘이 강해서 악신을 물리치고 어느 때는 악신의 힘이 강해서 선신을 물리친다. 그래서 인간의 고통이 생긴다. 그러나 결국은 선신이 악신을 완전히 무찌르고 세상은 지상낙원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가족 중의 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거나,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일구었는데 IMF가 터져서 갑자기 부도가 난다. 이런 일을 당하면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냐고 원망하게 된다.

 

이걸 다른 종교로 해석하면 재수 없게 악신의 힘이 셀 때에 내가 걸려든 것이 된다. 그러니 다시 선신의 힘이 세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숙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야훼 신은 절대자이다. 전지전능하다. 악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신이 어떻게 악이 활개 치도록 놔둔단 말인가? 혹시 야훼도 다른 종교처럼 때로는 악에게 지는 것이 아닌가?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해석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의 아들에 등장하는 신학도도 결국 이런 의문에 해답을 찾지 못해 자기가 새로운 정의의 신을 만든 것이다.

 

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너무 신앙심이 좋아 결코 야훼의 절대성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면 좋으나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찾으면 더 깊은 신앙을 갖게 될 것이고 못 찾으면 다른 길로 이른바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 자기식으로 성경과 야훼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소설을, 이런 깊이의 소설을 20대 중반에 썼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문열 사람의 아들은 깊이 있는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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