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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회장 일화

생각하는 글|2021. 7. 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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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하면 앤드류 카네기를 떠 올린다. 그는 미국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도 철강왕이 있었다. 바로 포항제철을 일군 박태준 회장이다. 박태준 회장과 관련된 일화들을 보자.

철강왕 박태준

중국이 한참 개방개혁을 단행하던 등소평 때의 일이다. 등소평이 일본을 방문했는데 일본의 제철 산업에 관심이 갔다. 제철 산업을 일으키면 나라의 경제 발전에 큰 힘이 됨을 깨달았다. 그는 일본 철강 관계자에게 중국에도 제철소를 세워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일본 관계자는 한 마디로 안 된다고 했다. 등소평이 왜 안되냐고 되묻자 그 일본인은 "중국엔 박태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박태준은 영웅이었다. 그래서인지 박태준 회장에 관한 많은 일화가 있다.

 

<최고 기준을 고집하라 중에서>

박정희와 박태준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사 제자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많이 아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516 혁명 이후 주변 사람들을 많이 정치에 끌어들였으나 박태준은 끌어들이지 않았다. 경제분야를 맡겼다. 그리고 우리나라 산업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된 포항제철 건립을 그에게 온전히 맡기게 된다. 

 

박태준은 박정희 대통령을 실망시키지 않고 포항제철을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일으켜 세웠다. 조선 산업과 마찬가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했다.

박태준 회장 일화

제철소가 완공될 즈음 용광로를 돌리는데 불량품이 나왔다. 박태준은 전 사원을 모아 놓고 그 용광로를 파괴시켰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리고 포항제철을 본 궤도에 올리고 나서 현충원의 박정희 대통령 묘를 찾아가 경례를 하며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 했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그만큼 그는 불굴의 사나이였고 의리의 사나이였다. 만년의 모습이 쓸쓸했던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최고 기준을 고집하라 중에서>

 

그가 청소년기 때 일본에서 자랄 때의 일이다. 전쟁 막바지에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일본 땅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공습이 있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 모두 지하 방공호로 숨었다고 한다. 하루는 역시 연합군의 공습을 피해 지하 방공호로 온 동네 사람들이 피했는데, 어느 할머니가 학생들은 좀 더 안쪽의 안전한 곳으로 앉게 하고 책을 읽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일본은 지금 패망하지만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할머니의 그 말을 듣고 박태준은 무서움과 함께 공부를 해야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후에 우리나라 산업 근대화에 있어 정주영, 이병철 등과 함께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1세대 창업주들은 가히 영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유명한 기업가들보다 뛰어난 인물들이라 한다. 그들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구어 낸 업적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외국 기업들의 견제 속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으니 그러한 평가가 과장은 아니라 생각한다. 비록 그런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었겠으나 그것은 어느 나라 기업이건 마찬가지다.

 

<최고 기준을 고집하라 중에서>

또 다른 박태준을 기다리며

박태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은 그만큼 늦어졌을 것이다. 포항제철로 인해 우리나라 기업은 질 좋은 철강을 싼값에 살 수가 있어 기업 발전에 큰 혜택을 입었다. 이러한 위인들이 지금도 필요한 거 같다. 정치, 경제가 많이 발전하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으나 그들의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이 다시금 필요한 시대가 됐다. 

 

경제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그러한 위인들이 다시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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